무엇이든 기록해 두는 습성은 불행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까지 기억하게 만든다. 몇 달 전에 써둔 일기를 다시 읽었을 때 느끼는 황량함. 왜 그에게 기도 제목까지 물어가며 매일 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나 하는 후회. 여러 가지 말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한 그의 행동들을 애써 나를 위한 것이겠거니 하며 스스로 합리화 했던 시간들. 여러 모로 좁은 식견, 얕은 이해, 협소한 인생이다. 고작 부여받은 이 한 몸뚱이와 마음조차 감당키 어려워 하는 것이 내 삶이다.

한 후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헤어질 걸 미리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좋은 말이었다. 그 말에서 자신의 마음과 앞으로의 행동이 만들어갈 미래를 자신하는 모습들이 뚝뚝 묻어나왔다. 그 말을 하며 웃음 짓던 후배의 표정, 지치지도 않고 계속 예쁘게 말아올리는 입꼬리가. 아주 잠시. 나를 불쾌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 본다.

'하다 보면 후회하는 일들도 많이 생길 거야. 그래도 계속 그 마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라고 답 해주었다. 아마도 그 후배는 내가 하는 말을 고깝게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말을 해 주었어야 한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내 마음과 행동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제 나는 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내가 상대에게 마음 주었던 일을 부끄러워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지난 시간을 '확신을 가졌지만 실패한 일'로 못 박아 두려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나는 실패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규정한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하며,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후회하는 것도 부끄러워 해야 한다.

스스로 내 마음과 행동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맞이할 숱한 '실패'들을 실패라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쥐구멍을 만들어 놓는 행동일 뿐임을 안다. 그래도, 아마도, 당분간은, 스스로 갇힌 방 안에서 이따금 자해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덜 아프다. 타인에게서 상처 받는 것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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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리섬 트랙백 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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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Roh* 2010/01/20 15:06

    뒤에서 세번째 문단... 몹시도 공감하는 바입니다.(말투가..잉?)

    • addr | edit/del 유리섬 2010/01/22 07:16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처절한 인생이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