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진단컨대, 나이를 먹을 수록 철이 든다기 보다는 오히려 생각을 하는 깊이가 줄어들었다고 본다. 이유는 한껏 요령 피우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라도 안부를 전하는 횟수가 줄었고,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엉킨 실타래에 대해서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장고를 거듭한 관계들이 끊어지면 내 존재조차 희미해질까 두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수 번의 경험은 그들이 내 기저를 흔들 만큼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았음을 알게 했다. 사실 가장 괴로운 것은 끊어질랑 말랑 하는 실을 붙잡으려 하는 노력이다. 분명한 단절은 아프지 않다.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인지한 후에는, 그네와의 단절 따위야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때문이다.
바라는 삶의 기조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슬프고 힘든 속에서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라, 늘 애써 힘내어 슬퍼하며 살았다. 이전까지는, 그래서, 슬프고 힘든 와중에도 분명히 행복하였다. 그러나 요새는 슬플 뿐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 슬픔을 감내하는 일이 아득하다. 하여 덜 힘들어하며 살려 요령을 피워보고 있다. 쉬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 덜 힘들어하며 사는 척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기운찬 척 하루가 지나고 있어요.